오늘의 주제는 보는 법
작가의 입장에서 '본다'는 것은 꽤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. 단순히 사물의 형상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'해석'과 '관찰'을 말하는 것 같다. 카메라는, 그러니까 기계는 사물을 그 무엇보다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. 하지만 '보는'것은 하지 못한다. 감정이 없으니까.
헤밍웨이는 황소의 뿔에 치인 투우사를 '보고' 이렇게 표현했다.
그 투우사가 일어섰을 때,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더러웠으며, 실크 바지는 허리에서 무릎까지 뜯어져 벌어져 있었고, 빌려 입은 그 바지는 더러웠고, 찢어진 속옷도 더러웠는데, 그런데 드러난 넙적다리뼈는 깨끗해도 너무 깨끗해서 견딜 수 없이 순백했다. <오후의 죽음>
와 글이 정말 맛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건 오랜만이다. 투박한 내가 이런 느낌을 느낄 정도라면, 정말 감정이 풍부한 작가들은 얼마나 큰 감동을 느낄지 상상조차 안된다. 이러한 글을 쓰려면 우선 대상을 '관찰'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. 그리고 본인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. 나무를 볼 때 화가는,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구조물이자 멋진 무늬의 빛깔을 지닌 대상으로 볼 것이고, 식물학자는 오랜 세월동안 환경에 최적화된 생체구조를 가진 대상을 볼 것이며, 목수는 그 나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구조물을 떠올릴 것이다. 글을 잘 쓰려면 모든 것을 '관찰하는'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.
데이먼 나이트의 추천은, 밖에 나가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한다.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때 까지 관찰한 다음, 그 대상에 대해 한 단락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. 새롭게 깨달은 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, 글을 다 쓰고 나면 관찰한 대상에게서 받은 자신의 인상이 글로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. 라고한다... 한번 해보자. 또 하나는, 공공장소에 가서 다른 사람을 관찰한다. 그리고 유난히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묘사하되, 일반적인 점들보다는 특별한 점을 상세하게 표현한다. 마치 캐리커쳐를 그리는 것처럼. 내일 포스팅에는 연습글을 한달락정도 넣어봐야겠다.